[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절망이란 단순히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논리가 꺾이고 지성이 힘을 잃고 최악의 감정 예컨대 증오조차 사라져 버리는 저 마구 쓰리기만한 감촉의 시간. 도회를 떠난다고 해도 이미 갈 곳은 없고 죽음으로써도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 불 더미 속에 쌓이기나 한 듯이 안절부절못하는 사나이여.

유희의 기록이라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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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냥한 여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담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들만 있으면 문학도 버리겠다고 장담해 본다.

쓴다는 것도 결국은 아편(阿片). 말라만 가고 헛소리를 하게 되고. 아아.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파이프를 물고 소파에 파묻혀 앉은 독자가 되고 싶다.

물론 고뇌를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렇지만 그들을 존경하기만 하면 그걸로써 의무감의 해방을 느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돼지가 되라고요? 맞습니다. 돼지가 됐었더라면……

[무진기행]

아니 내가 비꼬아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세무서장으로 만족하고 있을까? 아마 만족하고 있을게다. 그는 무진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니, 나는 다시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ㅡ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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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백사장을 거니는 산보에서 느끼는 시간의 지루함과 낮잠에서 깨어나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느끼는 허전함과 깊은 밤에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서 쿵쿵 소리를 내며 급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한 손으로 누르며 밤바다의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의 안타까움, 그런 것들이 굴껍데기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나의 생활을 나는 <쓸쓸하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허깨비 같은 단어 하나로 대신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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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쓰고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환상수첩]

"우리는 왜 대학에를 기어코 다니는 걸까요?"
"글쎄…"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끈기를 시험하는 거죠. 얼마만큼 해낼 수 있나 하고요. 우리는 뭐랄까 용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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